제목오늘의 의미2025-10-31 20:57
작성자 Level 10

#1_종교개혁 기념일
오늘은 1517년 10월 31일에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지 50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면벌부(Indulgence) 판매와 연옥설 등등 당시 교회가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는, 그릇된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함께 모여 논의하고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자는 취지로 붙인 반박문이었습니다. 그래서 95개 논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루터의 반박문은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도시의 지방대학 무명의 사제이자 교수인 루터의 글에 당시 정치계·종교계·학계의 유력자들은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루터의 외침은 외면당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를 통해서 루터의 글은 대량으로 복사되어 보름만에 전 독일에, 그리고 두 달만에 전 유럽에 퍼져나가게 되었고 놀라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루터와 같이 당시 교회에 부조리함을 느낀 사람들은 루터의 반박문을 읽었을 때 속이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이게 맞지'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두주자가 되어 거센 저항과 핍박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루터의 글이 이런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루터 개인의 능력 때문만이 아닙니다. 13세기부터 종교개혁을 위한 움직임들이 유럽 곳곳에서 있어왔습니다. 프랑스의 피터 왈도와 왈도파, 영국의 존 위클리프와 롤라드파, 이탈리아의 사보나롤라, 보헤미아의 얀 후스와 후스파 등이 적어도 루터보다 백 년 전에 종교개혁을 위한 운동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핍박 받아 흩어져버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박해 받아 흩어진 사람들은 바른 신앙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1517년 늦가을 루터의 글을 접했을 때 열렬히 반응하며 들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루터보다 더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도 이루지 못했던 종교개혁을 처음부터 종교개혁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루터를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의 실패를 통해서 그 땅을 다지시고 루터라는 사람을 주권적으로 세우셔서 교회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또한 종교개혁과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인쇄술 덕분에 종교개혁운동은 힘을 얻어 유럽전역에 뻣어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서도 교회사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의 나의 삶이 실패한 것 같고 초라해 보인다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렇게 보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오늘, 평범한 우리의 삶의 통해서 당신의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사랑합니다. 

20160818-183632-mojinchan.jpg
루터가 다녔던 에르푸르트 대학. 2차세계대전 때 문설주만 남기고 무너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사진 모진찬]

20160818-183558-mojinchan.jpg
구 에르푸르트 대학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졌는지 잘 알려주는 현판.

20160819-020427-mojinchan.jpg
에르푸르트 대학을 졸업하고 법학과에 진학하려던 루터는 사진의 스토튼하임 들판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보고 회심하여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20160817-231510-mojinchan.jpg
루터가 수도사로 살며 구원을 갈망했던 에르푸르트의 성 어거스틴 수도원. 현재는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20160820-185932-mojinchan.jpg
훗날 루터가 교수가 되어 가르치며 생활했던 비텐베르크. 멀리 성교회가 보인다.

20160820-195020-mojinchan-2.jpg
1517년 10월 31일에 성교회 문에 붙였다는 95개조 반박문을 재현해 놓은 문. 화재로 소실된 것을 청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20240813-173907-mojinchan-2.jpg
보름스 제국회의에 소환된 루터는 죽음을 각오하고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회의가 열렸던 장소는 오늘날은 하일스호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20240813-173717-mojinchan-2.jpg
루터가 서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던 자리에 마련된 루터의 신발 동상

20240813-101222-mojinchan-2.jpg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만들어진 황제의 신앙고백. "나는 전대 황제들이 선언한 모든 것을 지키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단 한 명의 수도사가 자신의 주장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며, 이는 과거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기독교 세계 전체에 어긋나는 것이다" 1521년 4월 19일 카를 5세 황제

20240815-211706-mojinchan-2.jpg
보름스 회의장을 탈출하듯 떠난 루터는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계획에 의해 납치되어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신분을 숨긴 채 10달 정도를 지내게 되었다.

20160816-231712-mojinchan.jpg
바르트부르크 성 안에 있는 '종교개혁의 방'. 루터가 이 곳에서 신약성경을 당대의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 성경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대량 생산되어 널리 읽혔고 종교개혁 뿐만 아니라 현대 독일어의 통일성을 형성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60820-213107-mojinchan.jpg

왼쪽은 비텐베르크 시청사이며 오른쪽은 루터가 평생 사역하며 설교했던 메리엔교회이다.


20160821-213053-mojinchan.jpg

루터 당시의 비텐베르크 시의 모습


20160820-185820-mojinchan.jpg

루터의 동상. 루터는 남은 평생을 비텐베르크에서 사역했으며 고향인 아이슬레벤에 사역하러 갔다가 그 곳에서 1546년 2월 18일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20160822-164127-mojinchan.jpg

루터보다 100여 년 전에 종교개혁 운동을 펼쳤던 체코 프라하 카를대학의 얀 후스.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잡혀서 죽고 말았다.


20160818-185305-mojinchan.jpg

루터를 상징하는 백조. 얀 후스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당신들은 거위(후스) 한 마리를 불태워 죽이지만, 100년 후에는 태울 수도 없고 삶을 수도 없는 백조(루터)가 나타날 것이다."


20160816-230442-mojinchan.jpg

활판인쇄기. "독일은 인쇄술을 개발하고 종교개혁을 이루어냈다" 교회사전집 7권 88p. 필립 샤프.


20240814-155655-mojinchan.jpg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활판인쇄술을 개발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의 동상. 30대에 마인츠에서 스트라스부르로 이사온 구텐베르크는 이곳에서 본격적인 인쇄기 제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