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가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우리 힘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트리면 도망치려 하곤 합니다. 도망치면 그 상황에서 당장은 벗어난 것같습니다. 더 이상 그 상황이 내 일이 아닌 양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망친 그 일은 여전히 남아 있고 우리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나이들면서 눈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하며 잠들곤 했습니다. 그러다 청년이 되어서는 정말로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으니 그것도 곤란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다시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어떨 땐 주책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이 왈칵 고여서 물이 가득찬 대접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심정으로 눈물을 컨트롤 하곤 합니다. 도망치는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눈물 이야기냐 싶을 겁니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나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견딜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에 몸이 반응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또 심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나에게 다가온 이 상황이, 이 압박이 나로 하여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이 눈물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눈물 흘릴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가해지는 죄책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던 자들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나의 죄를 마주하게 되었고 그 죄책감에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주의 은혜로 우리는 우리 죄의 심각성을 직면하고 애통하며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도망치지 않고 주님을 마주했을 때, 견딜 수 없어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려야합니다. 애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애통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룟인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도망친 곳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또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그 죄책이 그들에게 무겁게 다가올 때 가룟 유다는 끝까지 그 상황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과는 상관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끝나버렸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그 무거운 죄책을 마주했습니다. 도망친 곳에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유약해 보이는 베드로의 눈물은 다른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같은 도망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도망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시며 오늘도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군호를 짜고 다가와서는 배신의 입맞춤을 하던 그 가룟인 유다에게까지도 예수님께서 끝까지 "친구여"라고 부르시면서 손을 내미셨습니다. 도망치다 주저앉은 그 곳에 예수님은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같은 도망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그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찾아 주시고 회복시켜서 진정한 샬롬을 되찾게 해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오늘도 힘써 행복을 맛보게 되길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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