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바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룻기에 등장하는데 오르바는 룻과 함께 나오미의 며느리로 등장합니다. 모압여인이었던 오르바는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 시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동서 룻과 함께 남편을 여의였습니다. 졸지에 집안에 여자 셋만 남았습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돌아갈 무렵 나오미는 아직 젊은 며느리들에게 재가[再嫁]할 것을 권했습니다. 아무런 가망이 없는 자신을 떠나서 새 삶을 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 때, 오르바와 룻은 자신들의 안타까운 상황과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해 주는 시어머니의 사랑을 실감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녀들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합니다.룻1:9 그리고 룻과 오르바는 한목소리로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우리도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미가 한 번 더 권면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오미는 아주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하면서 두 며느리에게 자신을 떠나서 새 삶을 살라고 강권했습니다. 나오미의 이 권면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일까요?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하여 시어머니와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자기 민족에게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나오미가 한 번 더 권면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룻이 받았던 그 복을 오르바도 함께 받았을테니 말입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였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나선 효부[孝婦]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시어머니를 떠났습니다. 물론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떠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아름다운 며느리였지만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떠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 여자 친구는 이미 지난 과거입니다. 아무리 잘생겼고 예뻤어도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르바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떠난 사람입니다. 룻이 그 시어머니를 따른 것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르바는 행실이 좋았지만 거기에 하나가 더 필요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믿던 그 하나님을 붙잡는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아름답고,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좋은 추억들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떠난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이야기는 성경에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녀는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면 안 됩니다. 끝까지 주님 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왕년에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어도, 주님을 위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일을 했다 하더라도 오늘 주님을 떠나 있다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추억속에 아름다웠던, 사람 괜찮았던 오르바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약속을 붙잡은 룻처럼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오늘도 나아가야 합니다. 이 마음가짐으로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길 소원합니다. 오늘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길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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