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시로, 노래로 그린 것이 아가입니다. 둘은 출신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에 잦은 마찰을 빚습니다. 그런 마찰로 돌아섰다가 후회하고 다시 만나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들이 아가서에 담겨있습니다. 4장과 5장에도 그런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합의를 보지 못한 두 사람은 각각 솔로몬은 자기 친구들과 그 밤을 보내고 술람미 여인은 자기 집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참인데 솔로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늦은 시간이고 이미 잘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천근 같은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일어날까 말까 생각이 많았는데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잠이 확 깼습니다. ‘돌아갔구나!’ 철렁한 가슴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솔로몬에게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맙니다. 나중에라도 문을 열고 나올 술람미 여인을 위해서 솔로몬이 그 귀한 몰약을 문고리에 가득 부어 놓은 것입니다. 향을 맡는 정도가 아니라 손에 묻어나라고 아예 통째로 들이 부어 놓은 것입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부어 놓았습니다. 솔로몬의 이 사랑을 발견했을 때 술람미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깝다고 생각했을까요? 고맙고 미안했을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이야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끼지 않으셨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이 세상을 우리를 위해서 조성하시고 운행하고 계십니다. 작고 작은 우리를 위해서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서 전혀 가망이 없는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데 그런 우리를 위해서 너무 존귀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무한하신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가치는 무한하기에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씻고도 그 남은 가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과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과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엔 과소비인데 주님에게는 그것이 최선입니다. 주님은 항상 그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적당히 하지 않으십니다. 아끼지 않으시고 과소비를 하십니다. 거룩한 과소비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눈에 좋은 상황이 아닌 것 처럼 보일지라도 그 뒤에 주님의 최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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