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사역자. 줄여서 찬양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찬양사님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만들어진 찬양을 통해서 큰 유익을 누려왔습니다. 이 찬양사들에 대한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동안 찬양사들의 찬양을 통해서 얻은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사들 생각하며 함께 동역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한 때는 찬양사를 꿈꾸었습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락발라드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고 인정도 받던 때여서 하나님께서 찬양사역자로 부르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땐 생활이 참 힘들었습니다. 약속한 것같이 음반을 발매해야지만 찬양사역자로 인정을 받던 시기였기에 음반을 발매해 보려고 그렇게 곡들을 얻고 후원자도 발굴하고 제작자도 찾아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과정 가운데 시간은 한 해, 두 해 잘 흘러가고 또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했습니다. 그때 귀와 목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러니 찬양사역자로 사역한다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목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순종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찬양사들을 보는 눈은 남을 보는 것같이 할 수 없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찬양사로 사역하면서 생계를 위해 일을 병행하는 삶은 찬양의 깊이를 만들어 내기 힘듭니다.
찬양사는 곡의 아름다움과 깊이 뿐만 아니라 곡과 곡 사이에 한 두 마디 전하는 말에도 찬양의 가사 만큼이나 깊은 고백을 담아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찬양으로 많은 은혜를 끼치고는 말 몇 마디에 그 은혜를 상쇄시키는 분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찬양사는 음악적인 소양 못지 않게 영적인 소양도 잘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신학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된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찬양사나 찬양팀의 멤버라 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생활비를 얻기 위해서 찬양사역에서 얻어지는 수입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찬양사역을 통해서 수입을 얻는다고 하니 영리활동처럼 느껴지지만 찬양활동을 통한 수입은 지극히 정당하고 성경적입니다. 찬양사들에게 그 헌신과 수고에 걸맞는 수입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말씀과 기도 가운데 아름다운 찬양을 만들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찬양사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찬양들이 우리의 예배를 더욱 풍성하고 기름지게 할 것입니다.
33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그들은 골방에 거주하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역대상 9:33
위의 한 절이 한국교회가 찬양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의 말씀대로 하기 위해서 제도적인 보완도 있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찬양사들은 신학적인 학위도 있어야 인정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십수 년 전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직은 그런 것을 제도화하기에는 좀 더 기다리고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우선은 말씀에 순종하여 찬양사들에게 찬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아직 우리교회는 재정이나 인력이나 모든 부분에서 미약하지만 미약할 이 때부터 시작해야 나중에도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실천들을 이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교회의 섬김으로 동역하게 되는 찬양사들이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그 찬양사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찬양이 넘쳐나고 그 유익을 함께 누리게 되길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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