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칼럼] 용서는 마음으로부터2026-05-30 21:17
작성자 Level 10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형제의 죄를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하냐고 물은 것은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기준으로는 세 번을 용서해 주면 인자한 사람이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초기부터 '참을 인이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속담이 돌았는데 그 동네나 이 동네나 세 번의 용서가 한계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일곱 번의 용서를 제안한 것입니다. 이런 용서를 제안했으니 예수님께 크게 칭찬 받을 것이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베드로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만 달란트 빚진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금 만 달란트는 대략 250만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연봉이 5천만원이라면 대략 120조원 정도의 금액입니다. 벌어서 갚는 것보다 이자가 더 많이 불어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빚진 이 사람은 임금에게 자비를 구했습니다. 놀랍게도 임금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은 그 사람은 은혜를 입고 돌아가던 길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는데 그만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는 백 데나리온 빚진 그 동료의 목을 잡았고 그 동료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지 않고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그 자비심이 없는 자를 다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120조를 면책 받았는데 그에 비해서 60만분의 1을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백 데나리온도 작은 돈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어림잡아 2천만 원 정도의 금액입니다. 없던 일로 할만큼 작은 돈이 아닙니다. 못 받으면 많이 서운할 그런 금액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120조를 면책 받았다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용서하는 것을 대단하게 이야기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딱 490번을 용서하하는 말이 아니라 끝까지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490번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4900번을 용서하기로 작정했다 해도 여전히 예수님의 기준에는 못 미칩니다. 


마음에 몇 번을 용서한다고 세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몇 번을 용서했는지 세는 것은 언젠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정한 그 기준을 넘으면 너의 목을 잡아서 내 분을 풀고 옥에 잡아 넣어서 원수를 갚겠다는 속샘입니다. 세 번째에서 폭발하든 백 번째에서 폭발하든 결국 폭발해서 용서하지 못한다면 최종적으로는 그는 용서하지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 계산하지 말고 큰 은혜를 이미 받은 자 답게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용서의 왕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본 받으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면 우리 마음에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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